여름 한철 시끄럽게 울다 사라지는 매미. 그 요란한 몇 주 뒤에는 믿기 힘든 긴 침묵이
있다. 어떤 매미는 무려 17년을 땅속에서 보낸 뒤에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이 숫자에 이상한 규칙이 있다 — 미국의 주기매미는 딱 13년 아니면 17년
만에 나온다. 둘 다 소수(素數)다. 우연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연이 아니다. 이 숫자는 수백만 년에 걸쳐 다듬어진 생존 전략이다.
이 글은 (1) 땅속 17년의 삶, (2) 한날한시에 쏟아져 나오는 이유, (3) 하필 ‘소수’인 까닭을
순서대로 짚는다.
땅속 17년 — 뿌리에 매달린 긴 기다림

우리가 보는 매미는 삶의 마지막 몇 주일 뿐이다. 그 전 대부분의 시간, 매미는
애벌레(약충)로 땅속에 산다. 알에서 깨어 땅으로 파고든 약충은 식물 뿌리에
매달려 수액을 빨아먹으며 자란다.1 빛도 소리도 없는 어둠 속에서
13년, 혹은 17년을.
뿌리 수액은 영양이 묽어서, 이걸로 몸을 키우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매미의 긴
지하 생활은 ‘게으름’이 아니라 척박한 먹이로 버티는 느린 성장인 셈이다. 그동안 약충은
여러 번 허물을 벗으며 자라고, 마지막 탈피를 앞두고 땅 위로 올라와 성충이 된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의문 — 어떻게 정확히 17년을 셀까? 매미가 달력을 볼 리는 없다.
유력한 설명은 나무 뿌리가 보내는 계절 신호다. 나무는 해마다 잎을 내고 떨어뜨리며
수액의 성분이 주기적으로 변하는데, 약충이 이 연간 변화를 세는 방식으로 햇수를
가늠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가 차면, 약속이나 한 듯 같은 해에 일제히 땅을 뚫고
올라온다.
왜 한꺼번에? — ‘포식자 배불리기’ 전략

수백만 마리가 동시에 나오면 오히려 새·다람쥐 같은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을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한꺼번에’가 핵심 방어다. 이름하여 포식자 포화(predator satiation)
전략이다.2
천적이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먹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다. 매미가 한날한시에
감당 못 할 만큼 쏟아지면, 천적은 실컷 먹고도 다 못 먹는다. 남은 절대다수는 무사히
짝짓기하고 알을 남긴다. 만약 매미가 조금씩 나눠 나온다면, 나오는 족족 잡아먹혀 씨가 마를
것이다. ‘숨기’가 아니라 ‘압도하기’—이것이 매미의 첫 번째 수(手)다.
그 규모는 상상을 넘는다. 주기매미가 나오는 해에는 좁은 숲 한 에이커에서 수십만 마리가
솟아오르기도 한다. 새·다람쥐·물고기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어대지만, 그래봐야 전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개체 하나하나는 약하고 굼떠도, ‘숫자’ 자체가 갑옷이 되는 셈이다.
하필 ‘소수’인 이유 — 천적과 엇갈리는 수학
진짜 묘수는 주기의 숫자에 있다. 13과 17은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뉘는 소수다.
왜 이게 중요할까? 천적이나 기생충도 저마다 번식 주기가 있다. 만약 매미 주기가 12년
(2·3·4·6으로 나뉨)이라면, 2년·3년·4년·6년 주기의 천적과 자주 딱 맞아떨어진다. 주기가
겹치는 해에 천적 개체수가 폭발해 있으면 매미는 큰 타격을 입는다.
반면 17년처럼 나눠지지 않는 수는 짧은 주기의 천적과 좀처럼 겹치지 않는다.
예컨대 2년 주기 천적과 17년 매미가 동시에 절정을 맞는 해는 34년에 한 번뿐이다. 이렇게
‘엇갈림’을 극대화하니, 천적이 매미에 전문화된 사냥꾼으로 진화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2
이 소수 전략은 곤충학자들이 1966년에 처음 제안하고,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널리 알렸다.2
재미있는 건 소수끼리도 좀처럼 안 겹친다는 점이다. 13년 무리와 17년 무리가 같은 해에 함께
쏟아지는 일은 13×17=221년에 한 번뿐이다. 실제로 2024년, 두 무리가 동시에 출현한 드문
해가 있었는데 — 그 직전이 무려 1803년이었다. 매미의 달력은 이렇게 사람의
세대를 훌쩍 넘는 단위로 돌아간다.
두 전략의 합작 — 압도하고, 엇갈린다
정리하면 매미의 생존은 두 수의 합작이다.
| 전략 | 원리 |
|---|---|
| 포식자 포화(한꺼번에) | 천적이 다 못 먹을 만큼 압도 |
| 소수 주기(13·17년) | 천적 번식 주기와 거의 안 겹침 |
두 전략이 맞물리면, 천적 입장에선 ‘예측할 수도, 전문화할 수도 없는 먹이’가 된다.
어쩌다 매미가 나오는 해를 만나도 다 먹지 못하고(포화), 그 타이밍을 노려 개체수를 맞춰두려 해도
주기가 소수라 번번이 엇갈린다. 수백만 년의 자연선택이 빚어낸, 놀랍도록 수학적인
방어다. 생명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의 정교함은 극한 환경에 적응한 다른 동물들에서도 반복해서 발견된다.
그럼 한국 매미는? — 매년 우는 이유
“그런데 우리나라 매미는 매년 울지 않나?” 맞다. 13·17년 주기로 유명한 것은 미국의
주기매미(Magicicada)이고, 한국의 참매미·말매미 등은 주기매미가 아니다.
우리 매미도 애벌레로 여러 해(대략 3~7년)를 땅속에서 보내지만, 미국 주기매미처럼
온 개체가 같은 해에 몰려 나오지는 않는다.
비결은 세대가 겹쳐 있다는 것이다. 올해 알을 낳으면 그 자손은 몇 년 뒤에 나오고,
작년·재작년에 낳은 알들도 각각 다른 해에 성충이 된다. 그래서 매년 다른 ‘학번’의 매미가
번갈아 올라와, 우리 귀에는 여름마다 매미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몰아서 한 번’이냐
‘해마다 조금씩’이냐 — 같은 지하 생활이라도 전략이 다르다.
긴 침묵이 남기는 것

17년을 어둠 속에서 기다려 겨우 몇 주를 사는 삶은, 사람 눈엔 허무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조용한 지하생활’은 낭비가 아니라 전략이었다. 짧고 화려한 여름의 합창은, 사실
17년짜리 계산의 결말인 셈이다.
매미의 소수는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소수를 몰랐던 개체들이 천적에 먼저 스러지고, 우연히
소수 주기를 가진 개체들이 살아남기를 수백만 년 반복한 결과일 뿐이다. 자연은 이렇게,
계산 없이 계산의 답에 도달한다. 대멸종과 진화의 긴 역사가 그러하듯 —
지구 생명의 긴 실험은 지금도 우리 발밑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 주기매미 약충의 지하 생활·식물 뿌리 수액 섭취(13/17년).
Evolution of periodicity in periodical cicadas (NCBI) - 소수 주기=천적 회피·포식자 포화(1966 Lloyd·Dybas 제안, Gould 대중화).
ScienceAlert ·
Cicada Mania
※ 소수 주기의 진화적 설명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이며, 세부 기작은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